[식도락] 혼밥에 관하여(feat. 지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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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혼행 등 '혼자' 키워드는 이미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관계 안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저에겐 혼밥, 혼술, 혼행 등은 여전히 낯설고 장벽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2014년 2월 초 아버지께서 갑자기 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나시고, 인생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낄 때, 지인 분께서 '혼자만의 여행'을 추천하셨고, 그 길로 5박 6일 제주도 올레길 투어를 떠났던 게 아마도 제 인생 첫 온전한 '혼자'만의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5박의 일정 중 4일 간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정지한 풍경들과 아무리 걸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환경들에, 왜 그렇게 바삐 살았나, 왜 주변만을 의식하면서 살았나, 지금의 날 진정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난 이제 앞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로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평소와는 다른 깊이 있는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얻게 된 소중한 교훈은,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지금의 나의 환경을 잘 파악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해답은 자기 안에서 나와야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회사 일도 많이 바쁘고, 유지해야 할 많은 관계에 '혼자'를 놓치고 있었는데요. 심신도 지치고 약속도 없게 된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혼밥'을 선택했습니다.  요즘은 '혼밥'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토요일 저녁임에도 혼밥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더라구요. 고급 반숙 계란을 살포시 엎은 규동에, 반주로 딱 한 잔만 제공되는 생맥주 200ml 한 잔을 곁들입니다. 식사 시간은 불과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같이 온 일행을 의식할 필요 없고, 복잡한 생각에도 방해 받지 않는, 그래서 '온전한 나만의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는 게 우리네 일상이지만, '혼자'라는 시간 안에서 자신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때로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부여해야만, 우리는 좀 더 괜찮은 모습으로 '관계'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혼밥 음식점은 성북구청 근처 '지구당'이라는 일본식 덮밥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