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일기] 다른 사람, 자꾸 뒤돌아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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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p><img src="https://s9.postimg.org/cg2hf8ljz/image.jpg" width="290" height="406"/></p> <p><다른 사람>은 다니는 서점에서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읽기도 전에 이미 이 소설을 여러 키워드로 접했다. 내 안에서 '다른 사람=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전제가 만들어졌고 페미니즘이 대두되는 시점에 맞춰 태어난 프로파간다적 소설일 거라고 감히 넘겨짚었다. 늘 모른 척 지나쳤는데, 며칠 전엔 <다른 사람>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다. 정작 그 소설을 사러 갔을 때는 세워져 있던 책이 자리를 바꾸고 누워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 발짝 늦은 때에 다시 뭔가를 들여다보곤 했다.</p> <p>책을 사 들고 카페로 향했다. 평일의 카페에서 책을 읽는 건 요즘 내 최고의 사치이자 행복이므로 걷는 내내 마음이 좋았다. 그 기분은 책을 펼치기 전까지 지속됐다. 책장을 덮었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p> <p>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한 진아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남자친구는 같은 회사의 상사였고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자 진아는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나오게 됐다. 이 일은 인터넷에서도 이슈가 됐고 진아는 무차별적인 댓글 공격을 당한다. 어느 날 진아는 자기 마음을 긁는 트위터 글 하나를 발견한다. 잊고 지냈던 과거의 한 상처와도 관련된 내용이었다. 진아는 수진을 의심한다. 진아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유를 알기 위해 기억에서 많은 인물을 소환하는데 그 중 이야기의 흐름에서 큰 축을 이루는 인물은 수진이다. 수진은 원치 않은 관계로 임신을 했던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결혼 후에는 아이를 갖기가 어려워 그 상처가 더 곪아가고 있었다. 진아는 트위터 글에 대해 추궁하려고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던 수진을 만나러 고향으로 간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들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돌이켜보게 된다. 진아와 수진은 서로에게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 역시 상대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임을 깨닫는다.</p> <p>이 정도로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정리해 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내용을 더 자세히 정리한다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유리, 동희, 강현 등의 인물은 얼기설기 얽혀 있고 그 실타래를 푸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p> <p>데이트 폭력, 성폭력, 원치 않았던 임신 등. 소설에는 상처받은 여성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며 그 상처가 주요 사건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로 평가받고 읽힌다. </p> <p>강화길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페미니즘 소설로 분류되고 관심을 받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소재가 아닌 문학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지점은 없는 걸까 고민했다고 한다. 이 고민은,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읽어나가며 계속 마음속에 품었던 것이다. </p> <p><다른 사람>은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기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 줄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상처받을 수 있는지. 한 상처와 또 한 상처는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는지. 인물 각각의 감정의 결을 따라 세심하게 그렸다. </p> <p>어쩌면 이로서 <다른 사람>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다루거나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세상을 조금 더 섬세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침잠했던 시선을 주위로 돌릴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세상은 한결 부드러운 품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작가는 소설의 끝자락에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라고 이야기한다. </p> <blockquote>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 오래된 미래를 다시 펼쳐놓은 사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마지막 장. 모든 것이 끝나버린 그 순간, 대답할 사람은 바로 너니까. 그렇다. 이제는 네 차례다. (334p) </blockquote> <p>인용한 부분으로 '글'은 끝난다. 하지만 소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의 인용 뒤에 바로, 글이 아닌 형태의 무엇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이미 오래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유리의 이야기다. <다른 사람>을 읽어 볼 사람들을 위해 유리라는 인물에 관해선 어떠한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유리는 <다른 사람>에서 가장 따뜻한 인물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마음이 쓰였고 한번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읽어나가다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유리의 목소리를, 그 형태 없는 목소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됐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p> <p>작가는 <다른 사람>을 쓰고 유난히, 왜 이런 소재(여성 문제)를 택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이 질문에 담백하게 대답한다. 장편소설을 쓰기 전 먼저, 내가 무엇을 가장 잘 알고 있는지 질문해 보았다고.</p> <p>작가가 잘 아는 이야기는 나 또한 잘 아는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주고받았던 상처들이 내게도 있다. 지나친 농담도 웃어 넘기는 쿨한 여자인 척, 보통 여자와는 다른 척, 성별 따위는 내게 아무 상관없는 문제인 척 행동했던 내 모습이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그런 것들을 돌아보느라고 나는 그날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p> <p>그런데 이상했다. 그 슬픔 같은, 후회 같은 감정 뒤에 후련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강화길 작가를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한 명 늘었다. 고마운 일이다.</p> <p><br></p> </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