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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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9 (목)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6. 29 (목)

■ 열왕기상 22:29-40

 [ 무심코 당긴 활에도 ] 

전쟁에서 아합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갑니다(29). 유다의 여호사밧 왕도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했지만, 결국 진리를 선택하기 보다는 아합의 말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버려둠이 곧 징계이며 심판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아합이 스스로 죽음에 길로 들어간 것은 자신의 탐욕과 그 탐욕을 부추긴 거짓 선지자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탐욕과 거짓 영으로 인해 패망의 길을 걷는 아합을 버려두심으로서, 아합이 파멸이 결국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것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진실을 전하는 한 선지자의 말보다는 거짓을 전하는 다수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향하는 전쟁, 이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긍정적인 다수의 의견이 결코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하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혀 표적이 되게 하고, 자신은 군졸로 변장하여 전쟁터로 들어갑니다(30). 이는 불길한 예언을 한 미가야를 옥에 가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여호사밧에게 뒤집어 쓰우려는 비겁한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진리를 전한 미가야를 옥에 가두는 명령을 내렸지만, 결국 미가야가 한 예언에 스스로 갇혀 두려워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한편, 전쟁이 시작되자 아람 왕은 그의 병거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고 합니다(31). 이러한 아람 왕의 명령은 아합의 계획이 적중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왕의 옷을 입은 자만을 노릴 것이란 그의 생각이 적중하고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이 빗나간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아람 왕의 전략은 일반 병사로 변장한 아합은 살게 될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아합의 계획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전쟁의 상황 속에서 그대로 증명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람의 병거 지휘관들이 왕의 옷을 입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고 추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싸우려 할 때에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고 아람의 지휘관들은 그가 아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쫓기를 그치고 돌아가게 됩니다(32). 아무리 위험의 요소를 줄여도 하나님의 뜻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생각하만큼 꼭꼭 숨겨도 죄악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아합과 같은 사람의 계략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실행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변장한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갑옷 솔기를 맞힙니다(34). "무심코 당긴 활"이란 사람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람이 볼 때에는 우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갑옷의 솔기란 가슴을 가리는 부분과 복부를 가리는 부분의 이음새를 말한 것으로, 무심코 당긴 활에서 쏘아 올린 화살이 아합의 가슴과 하복부 사이를 정확하게 꿰뚫는 치명상을 입혔던 것입니다. 이는 아합이 화살을 맞아 부상당한 것이 우연이나 재수없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섭리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부상이 알려져 전쟁에 임한 군사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염려하여 병거를 모는 자에게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34). 전쟁터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아합의 생명이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들어 온 전쟁터였지만, 하나님의 뜻이 실행된 시점에서는 스스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치열하였고, 맹렬히 달려드는 아람의 군사들로 인해 아합이 탄 병거는 전쟁터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했고, 병거 위에서 아람의 군사를 막던 아합은 끝내 저녁부렵 많은 피를 흘리고 죽음을 맞습니다(35). 아합은 한때 사마리아로 수도를 옮기면서 많은 건축을 시행하여, 건축에 능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스라엘로는 가장 안정된 시기를 이룬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고, 악녀 이세벨의 충동에 넘어갔으며, 참 선지자인 줄 알면서도 엘리야와 미가야의 조언을 거부했던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합이 부상을 당하고도 그가 탄 병거가 저녁무렵까지 빠져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과다출혈로 인해 죽었다는 것은 많은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왕의 죽음에 진중에서는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36). 그러나 그것은 아합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합 왕으로 인해 고통 받던 백성들이 그가 죽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한 사람의 삶은 죽음 후에 진정성있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고 그에게 좋은 말을 하는듯 하지만, 정작 죽음에 이르면 전혀 다른 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버려둠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백성들까지도 그의 죽음을 기회로 삼았다는 것은 그가 왕으로서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음에도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의 시체를 메어다가 사마리에 이르러 장사하고, 그가 탔던 피로 흥건한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습니다(37-38). 미가야의 예언대로 아합 왕이 백성들보다 먼저 죽었고, 그의 죽음이 확인 되자 백성들은 흩어졌으며, 병거의 묻은 그의 피가 사마리아 못에 씻겨내리자 개들이 그의 피를 핥음으로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는 곳에서 네 피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19). 아합의 피가 씻긴 사마리아의 못에 대해 성경은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8). 창기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곳에서 음란한 제사를 섬기고 매음을 행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이처럼 우상숭배의 가증한 자들이 목욕하던 못에 아합의 피가 씻기어 졌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그의 죄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돌아갔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피가 창기들이 목욕하던 연못에서 씻기워졌다는 것은 매우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즉, 왕의 예우에 맞게 장사는 치렀으되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피가 가증하고 더러운 곳에서 씻기워졌다는 것은 그의 인생 전체가 치욕스러운 것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부와 영화를 상징하는 상아로 궁전을 건축할 만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룬 시기였습니다(39). 그러나 훗날 아모스 선지자는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선포하였습니다(암3:15). 이는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왕으로서의 영예와 자랑으로 삼았던 상아궁이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는 심판과 멸망의 대상이 될뿐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아합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됩니다(40). 그러나 아버지 아합이 쌓았던 악업은 그대로 아들에게 전가되고, 결국 그는 어느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난간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고 회복하지 못하고 왕이 된지 이 년만에 죽고 말았습니다(왕하1:1-4). 왕위를 물려 줌으로 부귀와 영화가 고스란히 자녀에게 대물림 된것으로 아합의 인생이 실패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하시야도 결국 예상치 못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됨으로서, 오직 인생을 복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물려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될 뿐입니다.

< 나의 기도 > 
하나님, 악인이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려 하여도 결국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심코 당긴 활이 내 인생에 파고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돌이킬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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