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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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3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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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7. 31 (월)

 ■ 민수기 22:36-23:12

[ 자기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신실함 ] 

모압 왕 발락은 복술사인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 변경의 끝 아르논 가에 있는 성읍까지 가서 그를 영접합니다(36). 그리고 발람에게 "내가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그대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냐 그대가 어찌 내게 오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어찌 그대를 높여 존귀하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37). 왕이 친히 영접을 나와 특별한 자로서 대접하며 높이고 존귀하게 해 줄것이라고 다시 한 번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 왕 발락의 마음 속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이라는 단서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내게 과분한 접대는 오히려 정직한 마음을 굽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압 왕 발락의 행동은 발람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반면에,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멸망시키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락 왕은 자신이 왕으로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은 발람은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한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38). 즉, 철저히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만을 대언하겠다는 뜻을 발락 왕에게 밝힌 것입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로 죽임을 받아야 할 자를 나귀를 통해 은혜로 살려주셨음을 깨닫고, 발람이 제시한 모든 부귀와 영화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람은 왕으로서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를 했으며,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이 왕의 뜻대로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와 동행하고 기럇후솟에 이르러서 소와 양을 잡아 극진히 대접합니다(39-40). 이는 발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들이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 접대는 피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직한 마음을 굽게 하고, 공정한 기준과 평가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먹고 누리고 즐기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굽은 길인 줄 알면서도 가는 것은 곧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청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올라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전체를 보게 합니다(41).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에게 요청하여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도록 합니다(23:1). 그러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거룩한 제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에 따른 것도 아닙니다. 고대근동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드리던 혼합된 종교의식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발람의 주술적인 기도에 응답하신 것은, 그를 통해 모압 왕 발락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즉, 발락이 가장 신뢰하는 자는 복술사 발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발람의 혼합적인 종교의식에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주권적으로 그를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발락은 발람의 말대로 수송아지와 숫양을 각각 일곱 마리를 준비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23:2). 이는 매우 성대한 제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사에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큰 것을 드린다하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의 제사에 응답하신 까닭이 아니라 주권적으로 그를 통해 발락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복술사라 할지라도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합당하게 사용하십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 말한 대로 지극정성을 다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드리고, 발람이 지시한 대로 하나님께서 말씀이 있기까지 번제물 곁에서 기다렸습니다(23:3). 하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서, 그를 신봉하는 발락이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 앞에서 하나님보다는 돈과 권세로 해결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기도나 예배는 단지 주술이며 종교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내가 부리는 신 바알로 전락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러한 자의 기도와 행위로 바뀌지 않습니다. 오직 정직하고 신실한 믿음의 간구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락에게 전합니다(23:7). 발락은 은밀하게 발람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기습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발락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발락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게획을 확실히 증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발람의 입을 통해 발락에게 "내가 바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9).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중에서 고립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고 특별한 은혜 가운데 홀로 번성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발락의 바람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심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과 같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모압과 발락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발람의 입술을 통해 발락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 발락의 행위와 의중, 그리고 이스라엘의 미래까지도 세밀히 관찰하시고 알고 계신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스라엘이 특별히 택하신 자기 백성 자기 소유임을 밝히시고 땅의 티끌 같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10). 발람의 말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저주받을 운명으로 바꾸려는 발락 왕의 헛된 꿈은 이루어질 수 없고, 자신도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는 일에 개입할 수 없으며, 이스라엘은 모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 따라 번성하게 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는 발락에게 오히려 이스라엘의 번성과 형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7-10).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의 미래를 아무리 사람이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한 번 정하신 형통한 미래와 약속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불완전성을 역설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외에 다른 것의 필요성을 말하는 자들은 모압의 왕 발락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약속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해 정하신 약속을 거두시지 않듯, 오늘 나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미혹받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거두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사방이 막힐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사방이 막히는 상황은 곧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인도하시는 주권적인 섭리임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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