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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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14 (월) ■ 민수기 31:1-12 [ 반드시 진멸되어야 할 악의 근원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도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1-2). 모세에게 마지막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미디안은 죄의 근원입니다. 신부된 이스라엘을 성적인 음행과 우상숭배로 몰고 가 타락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25:16-18).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죄의 근원적인 해결을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을 미혹할 것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애굽을 그리워했던 것과 같이 싯딤에서의 모압여인들을 그리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결별없이는 애착과 미련이 다시 이스라엘을 미혹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여호와의 원수"라고 말씀하시며, 전쟁에 나갈 사람을 무장시키고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명령하십니다(3). 하나님께서 이처럼 미디안을 원수로 부르신 것은 자기 백성을 미혹하여 음란과 우상에 빠지게 했던 미디안을 향해 얼마나 분노하시는 지를 알게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그러한 악을 행한 것을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때에 모세를 중심으로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은 요단의 동쪽 땅을 정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미디안을 언급하신 것은 "반드시 진멸되어야 할 악의 근원"으로 보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가나안 정복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음행과 우상숭배를 완전히 몰아내는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19: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라고 칭하시고 원수를 갚도록 하신 것은 개인 차원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한 근원적 죄악이며, 죄는 곧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창3:15). 그러므로 이는 보복차원의 명령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2:9-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각 지파에서 각 천 명씩을 선발하여 총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하도록 하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내도록 하십니다(4-6). 각 지파에서 천 명씩만 무장하도록 한 것은 당시의 미디안의 세력이 강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하면서도, 동시에 미디안과의 싸움이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을 군사들과 동행하도록 한 것은 이를 더욱더 확신하게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마다 숫자적으로 규모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일하게 천 명씩을 선발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선한 싸움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작다고 하여 하나님의 일을 미룰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숫자적으로 크고 작은 것을 떠나 교회는 교회로서의 마땅한 책임을 수행해야 합니다. 규모가 작다고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곧 영적인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직무에 태만한 것입니다. 미다안과의 전쟁은 이스라엘의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이스라엘이 감정적으로 미디안을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을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함으로서 신랑되신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며,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행되어야 할 전쟁이었습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칼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발람의 간교한 꾀를 따라 이스라엘 스스로 무너지도록 여인들을 통해 유혹했습니다. 이는 육체적인 원한의 관계에 따른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임을 시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칼을 들지 않은 제사장 비느하스를 전쟁의 일선에 서게 한 것입니다. 곧 칼에 의한 전쟁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특히, 바알브올 사건때에 미디안의 여인을 장막까지 끌어들인 시므온인의 조상의 가문 중 한 지도자를 그 여인과 함께 창으로 꿰뚫어 죽인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인 비느하스는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원수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반드시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였습니다. 죄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은 자가 하나님 앞에 지도자로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쳐서 모든 남자를 죽이고 미디안의 다섯 왕까지 죽였습니다(7-8). 또한, 모압 왕 발락에게 이스라엘 스스로 무너질 수 있는 꾀를 내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던 주술사 발람도 비느하스가 이끄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칼아래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의 수많은 재물과 목숨을 위협하는 권세 앞에서 이미 하나님을 경험하였던 발람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그 결과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미디안의 부녀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사로잡고 그들의 가축과 양 떼와 재물을 다 탈취하고 그들이 거처하는 성읍들과 촌락을 다 불사르고 탈취한 것, 노략한 것, 사람과 짐승을 다 빼앗아 요단 강 가 모압평지의 진영에 이르러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로 나아옵니다(9-12). 여호수아서에서는 이스라엘과 제사장 비느하스가 죽인 미디안의 다섯 왕들을 '시혼의 방백'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수13:21). 이는 당시 강성했던 미디안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복당하여 그 세력이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행정적으로만 독립을 이룬 식민지와 같았기 때문에 미디안의 다섯 왕들을 시혼의 신하인 방백들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부녀들과 아이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은 완전히 승리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들의 성읍들을 불사른 것은, 그들이 이룬 모든 성읍들이 우상숭배의 산물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당시 아모리의 속국과 같았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을 친 것은 자칫 아모리족속의 반격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모리 왕으로서는 지속적으로 조공을 바쳐 온 미디안이 진멸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승리는 곧 이러한 모든 위험을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군을 막은 족속은 없었습니다. 그 행군은 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음행과 우상숭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해결은 타협과 양보가 아니라 반드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따른 완전히 청산을 의미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로 음행과 우상숭배의 문제를 완전히 청산했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힘이 부족하거나 숫자가 작다는 이유로 선한 싸움에서 방관자로 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로서의 사명을 함께 감당해 나갈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