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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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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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의 아침묵상 / 2017. 8. 5 (토)

■ 민수기 26:1-51

[ 가나안 땅 배분을 위한 인구조사 ] 

모압 여자들과의 음행과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으로 내렸던 염병이 그친 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명령하십니다(1-2).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인구조사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명령하신 후에(25:17), 싸울 수 있는 군사를 계수하기 위한 인구조사가 아니라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의 분배를 위한 인구조사입니다. 이 인구조사에서 이십 세 이상 전쟁에 나갈 만한 자를 계수한 결과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습니다(51). 당시 미디안은 세력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으므로, 미디안을 대적하여 치기 위하여 많은 군사는 필요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미디안을 치기 위해서 선발된 인원은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만 이천 명을 택하여 무장시켰을 뿐이었습니다(31:4-5). 그러므로 두 번째 인구조사는 미디안과의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 배분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 배분은 각 지파의 인구숫자에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회중의 총수"를 조사하도록 명령하신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조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동체가 유지되고 운영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자들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이와같습니다. "나 한 사람쯤이야"하는 생각은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일에도 그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두 번째 인구조사는 첫 번째 인구조사 때의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보다 천팔백이십 명이 감소한 숫자입니다(출38:26). 물론, 숫자적으로는 감소한 것이지만 두 번째 인구조사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즉, 척박한 광야에서 밤에는 추위와 낮에는 뜨거운 열기와 싸우며, 곳곳에서 대적들의 공격을 당하기도 하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 오랜기간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사십 년간을 지내며 나라와 민족의 근간을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수 많은 사건 사고와 재해가 일어나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만이 하나님의 그러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듯이, 척박한 세상 속에서 더욱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지시할 무렵, 첫 번째 인구조사때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30).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대가 교체된 이후 후손들만이 들어가게 된 것은, 지속된 불평과 원망과 불신때문이었으며, 그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공동체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과거의 청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는 광야와 가나안 땅의 분기점을 이루는 곳입니다. 즉, 과거의 청산없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육체의 죽음이 이와같은 과거청산의 의미를 갖습니다. 민수기를 통해 나타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뿐만 아니라 때를 따라 주시는 물과 음식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불평과 원망했으며, 오히려 애굽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희망했었습니다. 심지어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며 우상숭배에 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인생들의 악한 탐욕에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육체의 죽음은 이러한 탐욕스러운 과거와의 완전한 청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볼 때에 이전의 것은 죽고 새로운 생명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듭난 인생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무한하며 세대를 초월하여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는 광야에서의 사십 년간 방랑에도 불구하고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 계수된 숫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51).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에서 죽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탐꾼들의 불신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성취하실 약속 앞에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거 육체의 썩어질 것들의 청산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 또한 묘연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 외에도 르우벤 지파를 통해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르우벤은 아버지 첩 빌하와의 간음으로 인해 영적으로 장자의 권한을 유다에게 빼앗겼습니다(창33:22). 그로인해 야곱은 르우벤에게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라고 하며 장자의 축복이 끊겼음을 언급하였습니다(창49:4). 그러나 한편으로는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라며 모세의 축복을 통해 하신 약속을 폐하지 않으시고 그 숫자가 가장 많아지게 하셨습니다(대상5:6-10). 또한, 다단과 아비람을 끌여들여 반역에 동참하게 했던 고라는 땅이 입을 벌려 삼킴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지만(9-10), 아버지의 반역에 동참하지 않았던 아들들은 아버지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존해 주심으로 약속하신 것을 끝내 이루시는 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11).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통해 모든 각 지파가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인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혈기와 분노가 있던 자로 여동생 디나의 강간 사건으로 인해 피의 보복을 하여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창34:25-30), 갓은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이었으며(창30:11),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은 물론, 그의 며느리와 동침한 자였습니다(창38장). 크고 작으며 적고 많은 차이는 있으나 이처럼 모든 이스라엘 열 두지파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후손들을 지키시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신실하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하여서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의 또 다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며,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우리는 은혜와 복을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끝내 정욕과 탐욕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기업인 약속의 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과 은혜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탐심으로 가득했던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통해 새생명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의 기도>
하나님 끊임없는 시련과 죽음의 장소이며, 불신과 배반의 장소인 광야에서도 끝내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려고 지키시고 인도하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새생명을 얻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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