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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0만원 날린 대학생의 정신승리

  코인투자로 1500만원을 잃었다. 3주 전만 해도 2100만원이었던 자산은 현재 600만원이 채 안된다. 코인 시장에 과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정부 발표 한 번에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이야. 내 투자의 강점이었던 이른바 '존버 정신'은 폭락장 속에선 자충수였다.

  압도적 후회! 통렬한 자책! '2000만원 넘겼을 때 팔았어야 해',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다' 매도를 고민했던 기억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알바 몇 달을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인가. 시급 8000원, 학업과 병행하더라도 하루 5시간씩은 내본다. 물론 연중무휴. 1500만원 채울 때까지 일한다. 계산해보면 54개월이다. 2년 반. 졸업할 때까지 공부랑 일만 하면서 한 푼도 안 써야 1500만원이다. 아아, 이 돈을 3주만에 날렸다. 내 노트북, 내 핸드폰, 내 옷, 내 유럽...! 할 수 있었던 일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멀쩡히 잘 지낸다. '압도적 후회! 통렬한 자책!!' 은 아주 오래가지 못했다. 어제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우연히 접한 그림이 맘에 들어 무심코 따라 그렸다. 이면지에 글쩍인 스케치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펜터치까지 끝내버렸다. 이젠 틈만 나면 소녀의 뾰루퉁한 표정, 펑퍼짐한 후드, 한쪽만 낀 이어폰을 들여다 본다. 이게 뭐라고 신이 날까. 돈은 여전히 아깝다. 1500만원과 이 그림을 맞바꿀 바보도 아니다. 하지만 2100만원을 달성했을 때보다 이 그림을 그리고 완성할 때의 행복감이 크다고 확신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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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을 매길 수 없는'이란 뻔한 수식어를 떠올려 본다. 행복엔 값을 매길 수 없다. 행복을 느끼는 유기체로서의 나는 비트코인을 받지 않는다. 코인시장에 비유하면 BTC-행복 마켓이 아예 없는 셈이다. 내가 투자 성공으로 느낀 행복은 1500만원 어치로 환전되어 머리 속에 입금되지 않았다. 그 행복은 돈을 불렸을 때의 성취감과 기대감에서 기인했다. 요컨데, '감정'의 산물이다. 번돈이 1000만원, 1200만원, 1800만원이었더라도 행복의 정도는 비슷했을 것이다. '꽤나 벌었다'는 느낌은 모두 같을 테니까.

  "펜 그림 1장이 1500만원보다 행복해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행복해요'를 자연스레 '가치 있어요'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재화로, 행복을 지불용의로 보는 경제학적 시선이 내재돼 있다. 그림을 그림으로, 행복을 행복으로 보면 달라진다. 그림을 그려서 얻은 긍정적 감정이 1500만원을 땄을 때보다 컸다는 말이다. 행복은 감정의 문제다. 경제적 가치가 어떻든 행복하면 행복한 거다.

  정신승리라고 욕할지 모른다. 정확한 지적이다. 정신승리 맞다. 큰 돈 날려먹고 멘탈이 산산조각 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신나있다. 생각없이 그린 그림에 혼자 감동한다. 호응도 적은 글을 몇 시간 들여 쓰곤 뿌듯해 한다. 다음 주 여행 갈 생각에 기분좋게 잠든다. 54개월치 월급을 날렸어도 내 일상은 여전히 행복하다. 투자에선 졌지만 정신은 승리했다.

  하락장 속에서도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 스티미언 분께 응원을 보낸다. 비트코인이면 몰라도, 다행히 행복은 돈 없이도 채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