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열광했던 것들
kr·@code999·
0.000 HBD그때 열광했던 것들
오래 전 산드라블록 주연의 영화 '네트'를 본 적이 있다.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컴퓨터를 엄청나게 잘 다루는 여주인공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범죄조직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당시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이 영화가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건 같이 영화를 봤던 언니 때문이다. 영화에서 혼자 사는 산드라블록은 외출도 안 하고 집에서만 생활을 하는데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컴퓨터로 음식을 주문하고 다른 사람과의 연락도 컴퓨터로만 하고 일도 컴퓨터로만 한다. 물론 영화인 만큼 산드라블록이 살던 집도 당연히 나쁘지 않았고 히키코모리같은 생활까지 즐거워 보였다. 워낙 오래 전 영화라 당시만 해도 산드라블록이 컴퓨터로 하는 일은 정말 최첨단이었고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의 스토리보다 산드라블록이 컴퓨터로 누리는 생활을 보는 데에 더 관심이 있었던 거 같다. 컴퓨터 하나로 일상의 모든 것을 해결하다니! 신세계도 그런 신세계가 없었다. 언니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부러워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당시 언니가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는 정말로 산드라블록처럼 살고 싶어했다. 오늘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언니한테 물어봤다. '언니! 옛날에 산드라블록 나오는 영화, 컴퓨터로 모든 거 다 하던 영화 생각나지?' '응' '그 때 언니 산드라블록 정말 부러워했었지?' '응' '우리 지금 그렇게 살잖아...좋아?' 대화를 하다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은 당연한 거라 특별히 좋을 게 있을 리 없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언니와 나는 지금 예전 영화 속의 산드라블록처럼 살고 있다. 히키코모리같은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걸 컴퓨터로 하고 있다. 일도 컴퓨터로 하고, 웬만한 연락도 이메일 혹은 컴퓨터보다 더 발전한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다 가상화폐 기반의 스팀잇까지 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영화 속 산드라블록보다 더 첨단을 달리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당시 그 영화를 보면서 산드라블록이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언니는 얼리어답터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든 최첨단, 혹은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관한 걸 보면 눈이 반짝거린다. 반면 난 여전히 그런 것에 시큰둥하다. 언니는 늘 새로운 산드라블록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여전히 남들 따라가느라 힘겨워하면서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영화 속 생활보다 더 발전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달라진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