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감정] 14 타인의 삶을 시샘하며

View this thread on: d.buzz | hive.blog | peakd.com | ecency.com
·@fgomul·
0.000 HBD
[안녕, 감정] 14 타인의 삶을 시샘하며
<center>![](https://cdn.steemitimages.com/DQmY2UVzFGwoUZwBGTWHvjjyrqqVs9giXW8dB5SwnRLvaRe/image.png)</center>

<center>_왜 그토록 타인의 삶을 쉽고 아름다워보일까 
내가 닿을 수 없을만큼 충만한 삶의 내용을 시샘한다._</center>

---

스팀잇을 하다 보면 누군가가 남긴 인생의 기록을 시간 역순으로 끊임없이 읽게될 때가 있다. 한 사람이 써 내려간 몇 년 단위 혹은 몇 개월 단위의 글을 뭐에 씐 사람처럼 읽어나가는 거다. 조금씩 내려가는 스크롤 속도에 맞춰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스크롤이 끝에 닿는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깊이 빠져 때로는 새벽녘을 지새운다. 내겐 온몸이 쑤실 만큼 몰입한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에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통 그런 글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누군가의 리스팀, 댓글, 혹은 잘못 누른 페이지 어딘가 나를 강렬히 잡아당기는 제목. 그러나 글 하나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적어도 그 사람이 공개한 만큼은) 모조리 알고 싶다는 욕구를 주기에 



최신 피드는 교류하는 목적이 좀 더 강하다면 오래된 글 그리고 아마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을  누군가의 글은 마음껏 음미하기에 좋다. 사람들은 스팀잇이 SNS고 오래되면 읽히지 않을 휘발성이 강한 글을 양산하는 구조라 말한다. 그 의견에 동조하지만 어딘가 삐딱한 나는 오히려 카테고리별로 친절히 나누어지지 않는 그 배려 없는 UI덕에 진짜를 알아볼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의도치 않는 긍정적 기능의 발현, 모든 포장이 벗겨지고 적나라한 알맹이만 있기에 오히려 선별이  쉽다.


분명 나를 위해, 이런 방식으로 읽히기 위해 쓰인 글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읽는 게 문제가 아닌 수 많은 글 들. 본래 의도와 다르게 읽히며 발견되는 의외성은 더욱 매력적이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타인의 삶을 몰래 훔쳐 읽다 보면 결국 하나의 생각에 도달하고 만다.


> 왜 이토록 타인의 삶은 쉽고 아름다워 보이는가?

분명 내가 읽은 글들은 인스타그램처럼 아름다운 빛나는 순간만 모아다 감각적으로 박제해놓은 글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 털어놓기 힘들만큼 내밀한 고백,  위기와 어려움, 고뇌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타인의 삶이 쉬워 보이는 건 내가 제삼자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실시간으로 겪으며 살아내야 하는 주체가 내가 아닌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겪는 역경이 난이도 쉬운 과제여서가 아니라  노력이 별 거 아니라서도 아니고 운이 좋아서도 결코 아니다. 그의 인생의 과업을 마주하고  의지력을 불태우고 결국 성장해버려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 그는 내가 아닌 타인이니깐. 그 한마디로 타인의 인생은 쉬워진다.


'결과만 보고 탐하지 말자'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이룩한 인생 전반에 대한 태도, 습관, 가치관은 물질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꾸만 탐하고 싶다.  나를 뺀 모두가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설사 누군가와 모조리 복제된 똑같은 삶을 내가 살아갈 수 있다 해도 그 일을 겪게 되면 오만가지 고통과 감정이 점철될 인생이었음을 아는데도 그 차곡차곡 정돈된 글을 읽고 있자면 자꾸만 타인의 삶이 쉽고 아름답고 가치있어 보이는 거다. 아니 상상도 못 할 두려움, 고통이 클수록  비례해 타인의 삶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나약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고민하는 한 여성에게 김미경씨가 조언을 해주는 유투브 영상을 보았다. 

>-J씨는 딱 보니 거기 오래 있지 못해요. 도화살이 있어요. 남들 앞에 서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죠? 거기 있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거에요. 원래 모습을 숨겨야 하는 거에요. 견디기 힘들죠. 
분명 J씨는 장점이 있어요.  그러나 <b>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용'이 없어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지 알아요? 한 번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해요.</b> 한 번은 싫어도 참고 견뎌야 해요. 아무런 내용이 없으면 장점이라는 틀도 다 소용없어요. 


새로 생긴 나의 취미 활동, 글쓰기. 글이 써지지 않았다. 아니 부끄러워 쓸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전하고픈 간절한 메시지가 있을까. 내가 살면서 겪은 경험 안의 제법 괜찮은 '내용'이 있을까. 내 삶에 조금이라도 타인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내 이야기는 가치가 있는가. 찔렸다. 


결국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 결국 글을 만드는 건 삶이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쓰는 건 금방 탄로가 난다. 내가 살아낸 경험이 아니면 진짜 내 것이 아니라면 생명력이 없다. 리얼리티가 없다. 글을 쓰는 연습도 어떤 글쓰기의 기술도 내용의 빈약함을 메꿔줄 수 없다.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있나, 나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그 메시지를 전할만한 치열함이 내 삶에 녹아있었나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이 밀려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내가 고정된 존재 같고 결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무기력한 날을 보내고 나면  미래에 대해 막연히 공포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인 일이 일어나도 버텨내면 사람은 2년 안에 다시 예전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변화가 와도 나는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강하고 나 역시 강하다.


나는 늘 행동보다는 사유가 좋았다. 실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고 내면의 나를 관찰하는 행위를 즐겼다. 나는 안다. 다른 사람들은 먹고살만하기 때문에 성찰할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 내일 당장 굶어 죽는다 해도 이 답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나는 성찰하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태어났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이러한 행동양식이 현실과 유리되고 철 없이 보이기도 했다. '그런 건 진짜 삶이 아니야. 너는 겁쟁이야. 세상에 나가야 한다고!' 내 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예술가의 행동양식에 익숙하지만 예술적 재능이 없는 나의 삶이 매우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나의 쓸모없는 깊은 고뇌가 어쩌면 무언가를 창작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창작하기 위한 좋은 틀을 가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거추장스러운 굴레가 사실은 내 장점이었다고.. 


어느 순간부터 밑바닥으로 떠밀리는 게 두려웠을까. 잃을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내가 가진 안위와 편안함을 놓치기 싫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걸까. 다시 찍어보자. 밑바닥. 괜찮다. 다 잃는다 해도 괜찮다. 나는 장점이 있는 인간이니깐 그 모든 게 나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잘 해낼 수 있다. 살아갈 날이 많다. 조금 더 열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계속 쓰기로 한다. 아직은 빈약한 내 삶의 내용을 채워가보려 한다. 기회를 주는 거다. 나는 좋은 틀을 가졌으니깐. 

내가 그토록 시샘하는 내용이 충만한 타인의 삶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P.S. 결국 사람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자신의 글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이다.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줄까. 내가 좋은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는 믿음을 지니자. 자신의 글을 긍정하자.

---

<sub><b>[안녕, 감정] 시리즈 </b> 
[01 입장 정리](https://busy.org/@fgomul/01)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https://busy.org/@fgomul/02)
[03 평화의 날](https://busy.org/@fgomul/03)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https://staging.busy.org/@fgomul/04)
[05 아플 때 드는 감정](https://staging.busy.org/@fgomul/05)
[06 열등감 - part 1](https://staging.busy.org/@fgomul/06-part-1)
[07 나의 무기력](https://staging.busy.org/@fgomul/07)
[08 열등감 - part 2 ](https://staging.busy.org/@fgomul/08-part-2)
[09 거짓 감정](https://busy.org/@fgomul/09)
[10 위로에 드는 감정](https://busy.org/@fgomul/7kwfmk-10)
[11 인정 그리고 책임](https://busy.org/@fgomul/11)
[12 멀어지는 교차로에 선 감정](https://busy.org/@fgomul/12)
[13 이름을 불러줘요](https://busy.org/@fgomul/13)
</sub>
---

<center><a href="https://www.gopax.co.kr">![aaronhong_banner.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aRR79wihMBmrBdiNq1iSes28DRgFzHJqWge8obwwpijv/aaronhong_banner.jpg)</a></center>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