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1년 만에 꺼내 보는 그 날의 일기
kr·@grapher·
0.000 HBD부치지 못한 편지: 1년 만에 꺼내 보는 그 날의 일기
그날, 그녀와 한 달만에 다시 만난 날. 첫 인사는 다소 짧고 냉랭했다. 그동안의 분위기만큼이나.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카페까지 걷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나에겐 그 어떤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녀의 긴 머리를 질끈 묶은 리본 모양의 머리핀과 항상 인형을 달고 나왔던 주홍빛보단 빨간색에 가까웠던 핸드백, 좋아하던 핑크색 코트, 상아색 신발끈의 흰 운동화, 청바지. 그녀의 모습을 뒤에서 눈에 담았다.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카페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피다 만 벚꽃이 가득했다. 해마다 그녀와 같이 보러가자고 해놓고서는 때를 놓치거나 했었는데.. 카페에 도착했다. 그녀와 처음 찾은 카페였다.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을 다시는 안 와도 될 공간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는게.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그녀는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그녀는 각자 계산하자고 했지만 내가 먼저 계산했다. 그리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고서도 우리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이윽고 진동벨이 울리고 난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녀의 라떼 잔에는 눈치없는 직원이 하트를 그려놓았다. 자리에 앉고 다시 한참 아무 말이 없다가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나에게 왜 화가 났는지, 얼마나 서운했는지 구구절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그녀는 이랬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항상 얘기했지만 닿지 않았던 것들.. 그것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는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화도 거듭 얘기했었기에 자기만의 시간을, 자기만의 일상을 소중히 여긴다고 항상 말해왔기에 다 알고, 아니 다 알았다기에는 성급해보이지만.. 어느 정도 알고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이해해보려고도 했지만 그래도 힘에 겨운 건 사실이었다. 내가 준 사랑만큼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돌아오는 표현만큼은 기대했던게 그토록 큰 잘못이었을까.. 사실 아직도 이 부분은 서운하고 아쉬운 부분이다. 그녀의 얘기가 끝났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였다. 입을 열려고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토록 연습하고 상상해왔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내가 서운했던 것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부터, 네 옆자리에 굳이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그 일까지. 너는 왜 믿어주지 않느냐고 얘기를 했지만 이건 믿고 안믿고의 문제와는 또 다른 일이었다. 돌아오는 표현이 없기에 점점 지쳐갔고 상처받았으며 이내 포기해버렸다는 것을. 너도 내가 최근 들어 점점 놓아주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하지만 넌 그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얘기했었노라고 '나는 원래 그래, 전 남친과도 그 문제 때문에 헤어졌어, 날 고치려고 하지 말아줘' 라는 말 뒤에 숨어서 얘기하는게 그토록 서운했노라고. 할 말은 다 마치지 못했는데 목이 메어와 입을 닫았다. 커피잔을 잡은 손이 떨려와 다른 손으로 떨리는 손을 꾹 눌러 잡았다. 앞에 앉은 그녀는 아까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고. 앞으로 주의하겠다고. 직감했다. 지금이 이 말을 꺼내야 할 타이밍이구나. 그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망설이고, 아팠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라고.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미안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가 좋을 것 같다고. 그 말을 하는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뚝 흘러내렸다. 비겁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그제서야 계속 봇물이 터진듯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후회할거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견뎌낼 자신이 없다.. 미안하다.. 그녀는 가만히 내 말을 듣고만 있다가 다시 말했다. 오빠가 그동안 날 기다려줘서 미안하다고.. 자기에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되겠냐고 이번엔 자기가 기다리겠다고... 그 순간에도 머리 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결정을 번복할까. 그녀가 변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만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여기서 끝내야할까. 그녀에게 희망고문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길었던 3년의 연애를 끝맺기 위해서는 지금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서는 가방을 들고 먼저 카페에서 일어났다. 그녀와 만난 많은 순간들 가운데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적은 처음이었다. 발걸음을 떼면서도 이 순간을 후회할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단지 내가 너무 힘들었다. 그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흘렀다. 3년간의 추억이, 사랑이, 그녀가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누가 볼세라 부끄러워 채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닦아냈다.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하지만 아직도 난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번호를 지우려고 핸드폰을 한참을 보고 있었지만, 결국 지우지 못했다. 아직은 내 마음에 크게 자리잡은 그녀가 덜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연락해서는 안된다.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뜨거웠던 커피가 식어버렸다. 차디 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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