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길’일 수 있을까?-추상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
busy·@kimkwa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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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는 ‘추상화’에 관심이 많다. 생각을 발전시키는 한 가지 방법으로써 말이다. 추상화란 개념 자체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풍요로운 삶에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우선 그 정의를 보자.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내게 하는 과정”(『생각의 탄생』111쪽)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이를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추상화란 ‘뼈대’다. 불필요한 것들을 다 추려내고 남는 것. 어쩌면 추상화하는 능력이란 사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리라. 추상화를 통해 인식을 확장하고, 삶의 영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추상화 능력은 키우기 나름이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추상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언어 이전 단계로 나아간다. ‘아하’, 하는 순간들. 머리에 불꽃이 일고, 가슴은 뜨거워진다. 하지만 이 깨달음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하자면 무엇인가로 표현을 해야 한다. 때로는 언어로,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춤으로……. 수학이란 학문 역시 추상화를 기반으로 한다. 0이라는 숫자를 비롯하여 여러 수식들이 추상화를 통해 태어났다. 애플의 여러 제품들 역시 추상화를 잘 구현했다고 한다. 언어도 그냥 언어가 아니라 시적인 언어. 즉,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나름인 은유로 곧잘 표현한다. 그래서 성경이나 바가바드기타 같은 경전을 보면 은유적 표현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은유 가운데 하나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이다. 특히 ‘내가 길이요’라는 은유를 나는 좋아한다. ‘진리’나 ‘생명’이란 말은 조금 막연하지만 ‘길’은 구체적이면서 은유가 풍부하다. ‘나’와 ‘길’은 현실에서는 따로 다. 하지만 여기서 ‘길’이란 은유다. 그에 따라 인식이 크게 넓어지고 깊어진다. 우리는 살다보면 ‘앞이 안 보인다. 캄캄하다.’고 할 때가 가끔 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남이 닦아놓은 길을 갈 때도 있지만 엄격히 따지만 늘 자신만의 길을 간다고 하겠다. 즉, 내가 걷는 걸음걸음 자체가 길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길’이라는 은유를 더 적극적으로 살리면 어떨까? 비록 그 길을 가다가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고, 수렁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또한 내가 간 길로 다른 누군가가 가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으면서. 다만 자신이 가는 길이 밝고, 맑고, 따뜻할수록 자연스레 따르는 사람도 많게 마련이다. 예수나 부처를 따르는 사람이 많은 이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다 자신만의 길을 가야하리라. 추상화 능력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더 분명하게 해준다. 앞서 인용한 구절대로 모호한 것들을 버리다 보면 ‘사물의 놀라운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놀라운 본질’은 늪이나 수렁이 아니다. 밝음이요, 빛이다. 신성에 가깝다. 그럼, 어떻게 그 능력을 키우고 훈련을 할 것인가. 아직 나 자신이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자각한 걸 말하자면 폭넓은 경험이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이를 토대로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좋은 그림을 많이 보며, 좋은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세계가 드러난다. 자신만의 시를 쓰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자신만의 춤을 출 때 추상화 능력이 부쩍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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