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내 영혼의 우주 관람차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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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 영혼의 우주 관람차 (3화)
![관람차5.jpg](https://steemitimages.com/DQmevz65SE6ETxH4oMkoALZhAjkb9KWu3FkoJECqPSzs74a/%EA%B4%80%EB%9E%8C%EC%B0%A8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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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3화 - 옛 친구들</h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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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sp;은재는 저녁을 먹을 때까지 「제인 에어」를 읽느라, 아까 주진이 했던 제안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저녁을 차리던 엄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그 얘기가 떠올랐다. 

&emsp;“은재야, 엄마가 미안해. 생일은 좀 특별하게 보내야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제 곧 반찬 사러 올 때라, 가게 문도 못 닫겠네. 어떡하지?” 그 순간 은재의 머릿속에 스펀지밥이 펼쳐졌다. 
&emsp;“아니야 엄마. 나 친구들하고 저녁 먹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
&emsp;“주진이가 돌아왔다더니, 같이 만나기로 한 거니?”
&emsp;“응. 주진이가 애들하고 같이 놀자고 하더라.”
&emsp;“잘 됐네. 주진이는 좀 어때 보였어? 아직 아파보이든?”
&emsp;“많이 좋아졌대. 그래서 병원에서 돌려보낸 거고.”
&emsp;“그렇구나. 너무 늦게 다니진 말고.”

&ensp;은재는 엄마가 주진에 대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진과 어울리는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도 조금은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친해왔다 해도 주진의 증세를 목격한 엄마로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의 미안해하는 얼굴 덕에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년 넘게 같이 놀지 않다가, 생일에 얼굴을 내밀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은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한편으론 주진을 포함한 옛 친구들이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ensp;은재는 가게를 나와서 스펀지밥으로 향했다. 어스름이 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지나면 어둠이 내리고 골목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질 것이다. 상구네 집 스피치가 대문 밖을 나와서 앙칼지게 짖어댔다. 은재는 몇 년을 보고도 자신을 모르는 척 하는 개를 한 번 노려보고는 골목을 따라 내려갔다. 마을 입구까지 거의 다다랐다. 스펀지밥이 보이고, 저 멀리 호숫가에는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호수 너머 상점들은 네온사인을 밝히고 있었다. 호수 안에 갇힌 채 천천히 움직이는 물 표면에 마지막 석양빛이 반사되었다. 스펀지밥 울타리 주변엔 가로등이 여러 개 있었다. 가로등은 스펀지밥 내부를 아주 밝게 비추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두운 밤에도 가끔씩 그곳에 가서 놀 수 있었다. 스펀지밥 안으로 들어가는 개구멍 앞에 주진이, 상구, 영욱이 등을 포함해 다섯 명의 아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주진이는 나를 보자, 내 쪽으로 몇 발걸음 걸어와서 나를 맞아주었다. 

&emsp;“역시 은재 너 올 줄 알았다. 생일에 이것만큼 짜릿한 놀이는 없지!”

&ensp;다른 아이들도 한 마디씩 거들며 은재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은 마치 은재가 주진과 함께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것처럼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은재는 이 아이들과 어울렸던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봉인된 기억의 한 부분을 지나서, 이 아이들과 뛰고 기고 웃었던 장면이 생각났다. 상구의 콧잔등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작은 흉터를 보면서, 끈끈이에 달라붙은 쥐가 얼굴을 들이밀며 약 올리던 상구의 코를 물고 늘어지던 장면도 떠올랐다. 은재는 상구의 멍한 얼굴을 보고 순간 웃음이 났다. 풉, 하고 웃자 주진도 은재의 등을 툭 치며 미소를 지었다. 

&ensp;제 시간에 도착한 아이들은 개구멍의 풀 뭉치를 치우고 울타리 안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은재가 맨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 5미터 높이의 거대한 스펀지 산들이 통로마다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는데, 순간 은재는 뭔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예전엔 지금보다 더 크게 느꼈을 텐데, 이런 위압감은 처음이었다. 은재는 스펀지 산 사이로 난 통로를 따라 사라진 친구들을 쫓았다. 네 그룹의 스펀지 더미가 모이는 사거리 모양의 통로에서 아이들은 다시 모였다. 

&emsp;“먼저 숨바꼭질을 할까?” 영욱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ensp;아이들은 그 의견이 동의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고, 울타리 밖에 서 있던 가로등이 좌우로 흔들렸다. 스펀지 산의 그림자도 크게 흔들렸다. 통로 저편에서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로 보아 그것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가 겨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발소리의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약속 시간에 늦은 네 명의 아이들이었다. 아랫마을에 사는 자매 쌍둥이 영주와 윤주도 있었다. 영주와 윤주는 학교에서 육상 대표로 나갈 만큼 운동을 잘하고 활동적이었다. 남자 아이들이 놀 때는 안 끼는 곳이 없었다. 영주와 윤주가 은재의 옛 친구들과 어울린 건 은재가 그들과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므로, 그들은 친구들의 회합에서 처음 만나게 된 거였다. 은재를 보고 쌍둥이 중 언니인 영주가 먼저 말했다. 

&ensp;“작년 백일장 1등한 유은재 아니야? 너 아파트 살지 않았어?” 그러자 동생인 윤주가 대꾸했다. “언니 백일장 1등이 아니라, 성적 1등 아니었어? 작년에 운동장 조회 때 상 받는 거 봤잖아.” 언니 영주가 다시 말했다. “아니야. 분명 백일장이었어. 내가 그때 참가했잖아. 반밖에 못 쓰고 종이 냈던 그 대회를 내가 잊을 수 있겠어?” 그러자 상구가 쌍둥이들을 제지했다. “야, 그만해. 은재는 두 상 모두 받았어. 그리고 은재는 우리 동산 마을에 살아.”

&emsp;“뭐?” 이번엔 쌍둥이가 한 목소리를 냈다. “아파트가 아니고? 정현지 무리랑 다니던데?” 
&emsp;“그건 친구니까 그런 거지. 야, 숨바꼭질 안 할 거야?” 
&emsp;“야, 그래.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언니가 말하자, “와 은재가 아파트에 안 산다니! 깜놀!” 동생이 맞받았다. 은재도 반갑다고 인사했고 드디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은재는 쌍둥이들의 반응에, 자신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잘못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의도한 건 맞는데, 스스로를 다른 포장지로 포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은재는 몸을 숨길 스펀지 산을 찾다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속이고 다니는 건 아니지, 하고 생각했다.

&ensp;첫 번째 술래는 쌍둥이와 함께 시간을 어긴 강찬이였다. 아랫마을 방앗간 주인집 아들이었다. 아이들의 게임 방식은 간단했다. 숨은 아이들을 모두 찾아야 하는 다른 숨바꼭질과 다르게, 단 두 명만 찾아내면 술래를 넘겨 줄 수 있었다. 이 넓고 숨을 데 많은 스펀지밥에서 모든 아이들을 다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명 째를 찾고 소리를 치면 아이들이 숨었던 자리에서 기어 나왔고, 새로운 술래와 함께 다시 놀이가 시작되었다. 붙잡힌 두 명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술래를 결정했다. 은재는 동쪽 울타리 근처 깊숙한 스펀지산에 숨기로 했다. 은재는 스펀지를 덮은 천막을 걷고 올라가 4미터쯤의 높이에서 스펀지 사이로 파고들었다. 은재는 샌드위치의 햄처럼 스펀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술래가 마지막 열을 세는 소리와 함께 은재가 몸을 숨기고 있던 스펀지가 흔들리더니, 은재가 엎드린 반대편에서 불쑥 머리 하나가 나타났다. 주진이었다. 1미터 앞에 주진이 포복을 하며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쉿! 은재가 입으로 바람 소리를 냈다. 술래가 근처에 있어. 주진은 움직이던 몸을 멈추었다. 그리고 집게  손가락 하나를 입에 갖다 댔다. 그들이 숨은 스펀지 산 옆 통로로 천천히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술래는 스펀지 산의 미동을 쉽게 눈치 챌 것이다. 술래가 그들을 발견한다면 바로 게임 종료다. 한 번에 두 명을 잡는 행운을 누리겠지. 그들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을 때 술래는 저만치 지나갔다. 이윽고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은재와 주진이 엎드린 스펀지 사이의 공간엔 울타리 밖 가로등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오렌지 빛만 구멍 난 천막 사이로 조금 비춰들었다. 사방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emsp;“오랜만에 하니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주진이 속삭였다. 
&emsp;“그렇다고 여기서 미치면 안 돼.” 은재가 대꾸했다. 

&ensp;주진은 그 말을 듣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은재가 옆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주진도 좀 편한 자세로 바꿨다. 그들은 잠시, 술래가 두 번째 아이를 찾았다는 전갈을 보내오지나 않을까 하여 바깥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쩡,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 다시 철컹, 하는 소리도 났다. 스펀지밥의 철문이 열리고 있었다. 누굴까, 이 시간에.

&ensp;“이런, 여기 주인이야. 창고 주인은 몇 달에 한 번 들를까 말까 한다던데 지금 무슨 일일까?” 주진이 속삭이듯 말했다. 주인을 본 친구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험악하고 거칠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몰래 이곳에 들어온 사실을 들킨다면 뼈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상구는 말했었다. 지금으로선 숨죽이고 창고 주인이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능사였다. 진짜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어디서도 두 명 째 아이를 찾았다는 전갈은 들리지 않았다. 술래인 강찬이도 어느 스펀지 산 속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스펀지밥에 숨어든 열 명의 친구들은 지금까지 숨바꼭질을 즐긴 이래로, 최고의 스릴과 최고의 위기를 맛보고 있었다. 

&ensp;창고로 들어온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닌 듯 했다. 여러 명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렸다. 스펀지를 어딘가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털썩, 하는 소리와 동시에 빠르게 달리는 발소리가 났다. 저거 뭐야! 남자 중 하나가 소리쳤다. 문 쪽으로 간다! 잡아! 다른 남자가 말했다. 아마도 아이들 중 누군가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열린 철문으로 탈출을 감행했을 거라고 은재와 주진은 짐작했다. 

&ensp;남자들은 아이를 놓쳤는지, 씩씩대며 말했다. 쟤가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어? 쟤 말고도 더 있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럴라구! 남자들은 황당한 상황에 자기네들끼리 의견을 주고  받고 있었다. 빨리 일이나 끝내자고.

&ensp;남자들은 부산스럽게 여기저기를 다니며 이야기를 했다. 10분 정도가 지났다. 점점 갑갑해오기 시작했다. 원하면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는 상황과,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감이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은재보다 주진이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10분 정도가 더 지났다. 남자들은 여전히 가까운 곳에 모여서 농을 주고받고 있었다. 주진의 얼굴엔 땀이 가득했고, 눈이 점점 풀리는 듯 했다. 

&emsp;“우주진, 너 괜찮아?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emsp;“현우가… 현우가 보이는 것 같아.” 주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말했다. 
&emsp;“뭐? 현우가?”
&emsp;“나 기분이… 이상해. 곧 미칠 것 같아. 내가 미치면... 애들이랑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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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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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재회 : https://steemit.com/kr/@kyslmate/1
2화-생일 : https://steemit.com/kr/@kyslmate/2
4화-치유 : https://steemit.com/kr/@kyslmat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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