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월가를 들어가며: 위험한 구애활동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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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center> <br> --- >**[월가를 들어가며]**는 뉴욕의 투자은행에 취직하기까지의 제 이야기를 각색한 연재 수필입니다. 지난 편은 본문 밑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 <br> <b>"모건스탠리의 기업설명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b> <br> 검은색 양복과 넥타이로 가득 찬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왼쪽 가슴에는 경영대에서 제공해준 명찰을 달았고 책상에는 이력서가 들어있는 포트폴리오를 놓았다. 그리고 모든 시선은 화이트보드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인사과 직원을 향해 있었다. <br> >"오늘 설명회는 한 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첫 15분은 저희 회사에 대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다음 20분 정도는 지난여름에 저희 회사에서 인턴을 했던 4학년 선배들과 질의응답 패널을 가질 계획이에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네트워킹을 진행하겠습니다." <br> 직원은 기업설명회에 참석을 한 모건스탠리 사람들을 직급 순으로 소개를 한 뒤 가장 직급이 높은 MD(managing director)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br> >"여러분처럼 이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br> MD는 옛 시절을 추억하듯 강의실을 쭉 둘러보며 본인이 졸업 후 어떻게 월스트리트에서 경력을 쌓고 모건스탠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긴 머리와 맞춤 제작한 슈트로 무장한 그는 마치 클라이언트에게 영업을 하듯 모건스탠리가 왜 최고의 투자은행인지를 학생들에게 설파했다.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학생들은 이 회사와 함께라면 언젠가 저렇게 성공할 수 있겠다는 망상을 저마다 꾸기 시작했다. MD가 파워포인트를 다음 장으로 넘기자 세계 지도가 화면에 펼쳐졌고 모건스탠리의 모든 오피스들이 큰 점으로 곳곳에 찍혀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회사가 담당한 M&A 거래를 정리해놓은 리그테이블에는 모건스탠리가 다른 경쟁사들을 제치고 1등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이 테이블이 당사가 가장 좋게 나올 수 있도록 몇 번씩 가공된 것인지도 모른 채 숫자들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물론 이건 업계에서 누구나 써먹는 수법인만큼 모건스탠리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항상 2등으로 거론되는 게 골드만삭스인 것을 봤을 때 결국 진정한 승리자는 골드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대한 전반적이 설명이 끝나자 MD는 잠시 멈춘 뒤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br> >"저거 예의상 물어보는 건데 꼭 낚여서 이상한 거 물어보는 얼간이들이 있지." <br> 내 옆에 앉은 친구가 고개를 절래 흔들며 얘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을 번쩍 드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br> >"안녕하십니까, 3학년 David입니다. 아까 미국 M&A 트렌드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현재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가 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그리고 모건스탠리는 이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br> 내 친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회사 전체 CEO도 아니고 일개 MD가 저런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David 역시 정말로 답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자기 이름을 각인하고 싶은 마음에 그럴싸한 질문을 던졌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선배들로부터 이미 철저히 취업교육을 받은 경영대생이었다. 그렇기에 이 강의실에서 저 친구의 검은 속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없었고 그건 앞에 서있는 모건스탠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앞에 펼쳐놓은 노트에 '전체 Q&A 시간에는 절대 질문하지 말 것'이라고 적어놨다. <br> >"David 아주 훌륭한 질문입니다." <br> MD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질문을 받은 마냥 제 선에서 그럴듯하게 답변을 해줬다. 역시 베테랑은 달랐다. 답변이 끝난 후 현재 3년 차 애널리스트로 일을 하고 있는 선배가 여름 인턴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br> >"10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예요. 저 또한 이 여름 인턴을 통해 모건스탠리에서 풀타임 오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br> 마지막으로 인사과 직원이 마이크를 돌려받아 여름 인턴을 지원하고 싶으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되는지를 알려줬다.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12월 초까지 학교 포탈을 통해 제출해주시면 됩니다. 그 후 저희 팀이 검토를 한 다음 1차 인터뷰 대상자들을 학교를 통해 1월 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차후 포탈에 명시를 하겠습니다." <br> --- <br> 발표가 끝난 다음 이번 여름에 모건스탠리에서 인턴을 했던 4학년 선배들의 패널이 진행됐다. 투자은행 내부에서도 세일즈, 트레이딩, 리서치 등 여러 부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쏠렸던 것은 M&A 업무를 하는 자문(Advisory. 보통 investment banking이라 불린다) 부서였다. 인사과 직원은 진행자 역할을 하며 준비되어 있는 스크립트에 따라 질문을 했고 선배들은 이번 여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돌아가며 답변을 해줬다. 사실 다른 투자은행들은 패널을 진행하지 않았기에 조금 신선했다. 일반적인 질의응답 세션은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진부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형식 때문이었는지 질문과 대답 모두 나름 솔직했다. 처음에는 약간 경직된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질문이 거듭됨에 따라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고, 인턴기간 동안 있었던 웃지 못할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도 하나씩 공개가 됐다. 전반적으로 선배들 또한 우리와 같은 대학교 출신이기에 후배들을 최대한 많이 이끌어주고 싶어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은행들은 설명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자사의 차별점이 무엇인지, 또 수많은 은행들 중 왜 여기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지에 대해 계속 어필을 했다. 어찌 보면 모든 투자은행들이 최상위 몇 프로의 학생들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각 은행은 최고의 학생들을 뽑고 싶었고 모든 학생들은 본인이 그 최고의 학생임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동물들의 구애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도 이 생태계의 일부였기에 어쩔 수 없이 불편한 마음을 누르고 전선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br> --- <br> 패널이 마무리되며 공식적인 발표는 끝났고 네트워킹 시간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각 발표자 앞으로 가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돌아가며 한 명씩 질문을 했다. 나오는 질문은 뻔했다. <br> >"왜 이 은행에 오게 되셨어요?" "은행의 어떤 점이 가장 좋으신가요?" "후배들을 위해 해주실 조언이 있으신가요?" <br> 네트워킹은 다시 구애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새로운 무대였을 뿐이다. 원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궁금하지 않았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상대방이 무슨 대답이라도 하면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실제 근무시간이나 보너스 수준 그리고 인턴 중 몇 프로가 정규직 전환이 되는지와 같이 정작 궁금하고 중요한 질문들은 하면 안 된다고 네트워킹 예절 교육 때 배웠기에 내뱉을 수가 없었다. 설령 누군가 용감하게 그런 질문을 지른다 하더라도 솔직한 답변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업계에 몇이나 될지는 미지수였다. 학생들은 원 안에서 발표자의 얘기를 듣다가 빈틈이 보이면 치고 들어가 미리 준비한 질문을 하나 던지고, 답변을 들은 다음 악수를 하고 다음 발표자에게로 넘어갔다. 계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회사에서 온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명함을 받는 것이었고, 발표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최대한 자신의 은행을 좋게 포장하는 것이었기에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br> --- <br> 밤이 깊어갔고 옆 강의실에는 도이치뱅크의 설명회가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기에 학생들은 하나둘씩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구애활동. 당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구애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왠지 이 게임에서 성공을 해야 훗날 부와 명예를 전리품으로 차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생들과 은행들은 서로 더 좋은 짝을 찾기 위해 위험한 구애의 춤을 10월의 밤이 깊어갈 때까지 추고 있었다. <br><br> --- **월가를 들어가며:** <br> [프롤로그 (01)](https://steemit.com/kr-pen/@menerva/01) / [3학년 가을학기 (02)](https://steemit.com/kr-pen/@menerva/3-02) ---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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