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월가를 들어가며: 레디 인터뷰어 원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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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월가를 들어가며: 레디 인터뷰어 원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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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들어가며]**는 뉴욕의 투자은행에 취직하기까지의 제 이야기를 각색한 연재 수필입니다. 지난 편은 본문 밑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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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음날 Eric과 Tiffany에게 보낼 이메일을 작성했다. 인터뷰 합격 여부에는 전혀 상관이 없었고 또 답장이 오지 않을 것도 알았지만 보내는 것이 예의였다. 그리고 외국인인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 진심으로 감사했기에 내 마음을 짧게라도 담아 전송했다.

한국에서의 남은 시간들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광화문 사거리를 자주 배회했고, 강남역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매일 부딪혔다. 때로는 영화를 보기도, 때로는 버스를 타고 정처 없이 멀리 떠나기도 했다. 시베리아로부터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차가웠지만 연말연시로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는 따뜻했다. 

오래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근심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했다. 하지만 시간을 보낼수록 현실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졌음을 인지했다. 다시 취업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지만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갔고 결국 떠나야 할 날이 거짓말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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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하는 날의 아침이 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지독한 두통과 감기가 찾아왔다. 약을 먹고 공항으로 나섰지만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 내 좌석은 복도였지만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창가 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차가운 비행기 벽면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은채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이륙 후 승무원들이 카트를 밀며 기내식을 나눠줬다. 먹으면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 뜨거운 밥을 억지로 삼켜봤지만 곧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기내식을 치우자 기체의 불이 꺼졌고 어둠 속에서 비행기 벽이 엔진 소리에 맞춰 조금씩 흔들렸다. 

고독 속에서 지긋이 눈을 감아봤지만 원인도 알 수 없는 두통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학교로 돌아가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18개의 지원서를 제출했었다. 그중 15개는 투자은행이었고 나머지 3개는 컨설팅 회사였다. 같은 회사라도 여러 지점을 지원한 경우가 있었기에 실제 회사의 개수는 그보다 조금 더 적었다. 

학교를 통하지 않고 따로 지원했던 A 은행과는 1차 인터뷰를 이미 전화로 진행했다.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만약 통과를 한다면 최종 면접은 뉴욕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나머지 17개는 경영대를 통해서 지원했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인터뷰 스케줄을 일괄적으로 관리했다. 개학을 하기 전까지 회사별로 1차 인터뷰 명단을 발표한다고 했다. 한 회사당 인터뷰 자리가 12개에서 24개밖에 없는 만큼 쉽지 않은 확률 싸움이 될 예정이었다. 

과연 몇 개의 회사로부터 1차 인터뷰를 받을 수 있을까? 절반은 될까? 1차 인터뷰 중 절반은 2차 인터뷰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최종면접에서 오퍼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곱셈을 거듭할수록 확률이 현저히 작아졌다. 순간 A 은행과 전화 인터뷰 중 저질렀던 실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홍콩 오피스에 지원하지 않겠다고 패기를 부린 것이 후회가 되었다. 왠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만 결정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사위는 이미 굴려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미국에 남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18개의 지원서를 제출한 곳 중 단 한 군데서만 오퍼를 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실패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확률보다는 눈 앞에 주어진 기회들을 하나씩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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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좌석 등받이를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알기가 어려웠지만 눈을 뜨니 비행기가 미국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머리는 조금 덜 아픈 것 같기도 했지만 속은 아직도 매스꺼웠다.  

공항에서 내린 후 입국심사대를 통과했고, 짐을 찾아 택시를 탔다. 학교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각이 늦어 해는 이미 진 뒤였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광야는 언제나 그렇듯 외롭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차는 기숙사 앞에서 멈췄다. 들어와 짐을 풀고 나름대로 정리도 조금 해봤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내 방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시차 때문에 천장만 계속 바라보다 결국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이메일이 여러 개 와있었다. 

학교 이메일로는 인터뷰 명단이 도착했다. 지원했던 14개의 투자은행 중 8곳으로부터 1차 인터뷰를 받았다. 대형 은행 4곳 그리고 부티크 은행 4곳. 그리고 3개의 컨설팅 회사 중에서는 2곳으로부터 1차 인터뷰를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일단 절반은 성공했구나.

개인 이메일을 들어가자 A 은행이 보낸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축하합니다! 귀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최종 면접을 위해 뉴욕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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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의 지원서.

11개의 1차 인터뷰.

일단 1개의 최종 면접.

그리고 내가 미국에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오퍼.

운명은 아직까지 내 손 안에 있었다.

레디 인터뷰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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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들어가며:**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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