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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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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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필자의 책상 앞에는 충북 영동의 금강에서, 아내와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을 보면 필자의 손에 여울낚싯대와 미끼를 든 검정봉지를 들려있다. 누가 보더라도, 봄이 오는 강가에 소풍을 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날짜를 보면 2005년 4월 25일이다. 필자가 회심하고 기도를 시작한지 약 3년 정도 지났을 때이다. 당시에 필자는 아내와 함께 화장품 캐리어를 끌고 재래시장과 식당가를 누비며, 저가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고단하고 팍팍한 시절을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당시는 방문판매를 얼마나 할지 아무도 몰랐던 시절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무려 10년을 더 했으니까, 아마 미래의 일을 알았더라면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망연자실하며 통곡하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의 기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방문판매를 하다가 신산한 인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되찾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면, 패역무도하고 배은망덕한 가증한 인간이라는 저주를 받아 지옥에 던져지더라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을 깜빡하면서, 필자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된 생각과 행동을 했을 때 후회 막급한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오면서, 송구스럽고 황송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게 된다. 그게 필자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것이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아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백만분의 일이라도 갚지 못할망정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다니,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가 정말 힘들었을 때의 사건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가 가슴에 새기는 심정으로 그 때의 사건들을 말씀드리고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30대 초반에 필자가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무지막지하게 인생이 떠내려갔다. 닥치는 대로, 학원강사, 우유배달, 자장면 배달, 다단계사업, 보험외판원, 길거리에서 계란빵을 구워 팔고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한번 꼬여버린 인생은 풀리지 않았다. 끔찍한 좌절과 실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필자는 세상의 끈을 붙잡으려고 아등바등 거리던 손조차 그만 놓아버렸다. 낚시가방을 들고나가서 하루 종일 낚시터에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면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보다 못해, 생계비라도 벌려고 백화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매일처럼 낚시터에 앉았지만 마음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땅거미가 내리는 저수지에 앉아있었다. 비에 젖어 몸은 추웠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윽고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지나간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고, 필자의 눈에는 회한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울다가, 하나님께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기도를 시작하게 된 그 때가 필자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또 다른 사건은 필자가 우유배달을 했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 때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기 전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던 시절이었다. 새벽에는 우유배달을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아침을 차려먹고 보험회사에 출근해서 보험외판원을 했었다. 어느 겨울날 새벽에 일어나보니 영하 10도가 넘었으며, 간밤에 폭설이 내려 도로라 빙판이 되었다. 우유배달은 새벽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이라 도로는 그야말로 빙상장이 따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유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얼음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두발을 도로에 내리고 안간힘을 쓰며 중심을 잡으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 브레이크를 잡으면 순식간에 오토바이가 도로에 미끄러지고 만다. 그래서 브레이크도 잡을 수 없다. 마음속에서는 눈물 섞인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몸부림도 소용이 없이, 오토바이가 도로에 넘어져 미끄러지면서 달리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처럼 삶이 절망스러웠을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목숨이 붙어있기에, 그 때 그 얘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리라.

세 번째 사건은 화장품방문판매를 처음 시작할 무렵이다. 처음에는 아내와 단둘이 한 게 아니고, 봉고차에 여러 사람들이 타서 소도시나 읍면단위를 돌면서 한사람씩 내려주면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봉고차 주인과 판매원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아내가 처음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겠다고 하자, 필자는 아내를 혼자 내보내는 게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필자도 봉고차에 함께 타보기로 했다. 그러나 필자가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아내가 낯선 남자의 봉고차를 타고 타지를 떠돌아다니는 게 염려가 되어서였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가 보았다. 하루 종일 봉고차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무료해서, 용기를 내어 필자도 한번 해본 게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중년남자가 생전부지의 여성에게 화장품을 발라보주며 파는 것은 낯설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전혀 못 판 것은 아니었다. 시골에는 이런 저런 장사꾼들이 오니까 필자도 전혀 못 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충남 서천에 가게 되었다. 서천은 작은 읍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판매원이 많아서 중심가에 다른 판매원을 내려주고, 필자는 읍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내려주었다. 내리고 보니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으며 상가가 거의 없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몇 시간동안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낙담과 좌절의 생각이 폭풍처럼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 이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천역사에 들어가 자그마한 대합실에서 고개를 처박고 몇 시간동안 절망해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사건이 아내가 더 이상 봉고차를 타지 않고, 필자와 단둘이 화장품 판매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절망스럽던 그 때를 추억하면, 고단한 삶이 생각나서 눈이 흐릿해진다.

오늘 이 사건을 얘기하는 이유는, 필자가 그 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면 개죽음을 당해 지옥에 던져져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등 따습고 배불러지니까 스멀스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행동을 생각 없이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필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필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깜빡깜빡 잊었다는 송구함과 황송함에 가슴이 저려서, 그 때 그 사건을 여러분에게 고백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시137편)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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