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주 영성학교 훈련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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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주 충주영성학교 훈련 및 코칭후기 기도훈련의 길잡이 목사님과 코치분들의 코칭내용입니다 동기부여 처음 영성학교가 시작되었던 오래된 농가 주택을 소유한 주인은, 그 부친이 일제 강점기 때에 땅 30만 평 정도를 소유한 거부였는데, 거대한 금맥을 발견하여 금광의 소유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비행기를 공출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하여 소유를 빼앗기고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후에 자식에게 물려준 땅이 10만 평 정도나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온 우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이 같은 횡재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이 일생일대의 횡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가족을 팽개치고 예수님을 따랐고, 요한과 야고보도 부친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께 올인했습니다. 사도들에게 훈련받았던 2세대 성령의 사람인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서 기적과 표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자신이 횡재를 했다고 믿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술사 시몬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잘 나가는 마술사였던 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본 후, 자신이 가졌던 은 오만의 값어치나 되는 마술책을 불사르고 전심으로 주를 좇았습니다. 그 아까운 것을 왜 불사릅니까? 자신의 마술은 가짜였고, 빌립이 보여준 표적과 이적은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진짜에 올인을 하려고 불사른거죠. 여러분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횡재라고 믿으십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 만큼 올인하고 계십니까? 그런 분은 놀라운 기대감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칠 것입니다. <무디어진 마음의 해결>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일러라. (막6:52) 미혹이 영의 전략 중 걸려들기 쉬운 것이 마음이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기도훈련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신 분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하며 기대감에 차서 코칭을 듣습니다. 2~3년이 지난 분들은 눈빛에 기대감이 없고 식상한 태도로 듣습니다. 심지어는 졸기도 하시죠. 이 기도는 깨지는 얼음판을 걸어서 강을 건너듯이 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영성학교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또 하나의 종교 생활처럼 굳어지고 있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① 절박하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영성 학교에 오시게 된 많은 분은 대부분 귀신에 의해 삶이 초토화되어서 오신 분들입니다. 이미 마음에 절박하게 기도해야 할 동기가 분명한 분들만이 끝까지 이 기도를 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절박하게 하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느슨해지고 무디어지는 공격에 노출되고 갈급함과 가난함이 사라집니다. 이런 경우에도 무디어지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기도의 동인은 절박하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경우입니다. 습관이 그에게 기도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습관들인 사람은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절박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함을 아시고 주님께선 기도에 습관을 들이기 위해 훈련하셨습니다. 습관들이지 않으면 성령의 사람으로 시작하였다 할지라도 육체의 사람으로 마칠 것입니다. 신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파리목숨과도 같이 위태롭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맡겨주신 영혼들을 구원의 강가로 이끌고, 정예용사로 양육하시는 큰 책임이 바로 기도의 동력이고, 이를 버텨내는 것은 습관 들여진 기도의 힘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루 너덧 시간은 기본으로 기도하고 계시지만 사역이 열리기 전 job을 가지고 계실 때도 동일하게 습관대로 기도하셨습니다. ②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이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향한 전심과 절박함이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무디게 하는 요소가 바로 죄입니다. 이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내는 회개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야 매시간 절박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청결케 하는 일을 게을리하고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죄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집니다. 마음이 어두워지며 하루종일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마음이 무뎌지게 되고, 기도가 끝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도시간마다 보혈의 강물에 뛰어들어 죄 씻음을 받고 거룩함과 평안과 자유함 가운데로 나오십시오. ③ 경고를 기억함 북을 쳐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내버려 두라 아니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있는데도 변화가 없는 무디어진 마음을 가진 자가 도대체 누구지? 하시며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신 분은 설마 없겠죠?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장본인인 가룟 유다처럼 ‘주여 누구오니이까?’ 하고 묻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 내 마음이 이렇구나! 어떻게 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주님께 물으셔야 합니다. 혹은 제사장 엘리처럼 하나님이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저주하신 대로 하옵소서 하며, 될 대로 되라하고 주저 앉아서도 안됩니다. 아무리 알려주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처럼,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장님처럼 어두운 영적 시야를 가지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몸부림치며 회개하고 내가 실천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13:12) 이 말씀은 ‘마태복음 효과’라는 닉네임의 진리입니다. 읽을수록 섬뜩합니다. 이 말씀 앞뒤 구절은 씨뿌리는 비유와 그 해석이죠. 이미 있는데도 더 받아 더욱 부유하게 되고, 없는 사람은 있는 소유마저 빼앗기게 되는 불공평한 결과가 바로 마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단 한 가지 말씀이라도 뿌려지면 실천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로 이어지는 마음인가요? 주인이 아무리 씨를 뿌려대도 말라져서 아무 열매도 없는 황폐한 마음인가요? 심판 날에는 내 소유라고 생각했던 내 생명마저도 빼앗겨 지옥으로 던져지게 되는 슬픈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마음이 변화가 자신도, 다른 사람의 보기에도 있어야 합니다. ④ 열매 맺는 착하고 좋은 마음 말씀을 실천해서 열매를 맺는 이 마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갈아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쓰는 그 사람만이 매 순간 달라지는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순종해서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며 순종할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지키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을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매주 영성 학교에 오는 것이 재미나고 좋아야 합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코칭을 마음에 잡아서 일주일 동안 순종해보고 변화를 경험해볼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매주 달라지고 매주 더 많이 승리하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께서 옆에서 기도하라고 부추기십니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난 후에는 변기 뚜껑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볼일 보고 나서 잊어버리고 그냥 나온다면 아직 죽기 살기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순종을 못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은 기필코 변기 뚜껑을 닫고 나오리라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겁니다. 아내가 치약을 중간에서 짜지 말고 아랫부분부터 밀어 올려서 사용하라고 부탁하면 잊지 말고 순종하고 있을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성 학교 코치분이 하셨던 훈련내용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듣고 다 알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도 안 지키거나 순도 100의 온전한 순종을 안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마음을 점점 무디게 만듭니다. 말씀을 준행하는 데까지 가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⑤ 처음 사랑을 회복함 에베소 교회는 신생한 어린 교회가 아닌 순종이 넘쳐나는 믿음이 성숙한 교회였습니다. 주님도 이러한 순종을 아셨고 언급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책망을 들었는데,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린 것이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교회로 인정을 하지 않겠다고 엄중히 말씀하신 것은 교회는 주님의 신부이기 때문이죠.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처음 사랑이란 first love인데 신부가 신랑에게 주는 best love, 최고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일보다 주님과의 관계에 최우선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종일 주님을 찾고 나를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비우는, 말씀과 기도의 삶에 최우선을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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