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위해 마약 안했다고 기자에게 거짓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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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위해 마약 안했다고 기자에게 거짓말 하다
#2018년 5월6일 (일) 마약일기 일곱번째 이야기

오전부터 계속 내게 진짜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됐는지 문의하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쏟아진다. 이제 기자들에게 퍼질 만큼 퍼지고 있나보다. 아는 선배 말로는 경찰청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이미 이 정보가 유통이 됐고 이걸 기사로 써야 할지 말지를 두고 토론하고 있다고 한다.

![jjtK.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c5pPjBhqotQBfzCNfdPpLyWejWCaWQHNF3G6gbPYMWEz/jjtK.jpg)

큰 일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퍼질 수가 있는가. 내가 그간 경찰에게 밉보이긴 했나보다. 어떻게 한 사람의 개인 정보를 이렇게 찌라시로 유통시켜버릴 수 있는가. 지난 몇 개월간 나는 경찰 정보국의 개혁을 위해 기획 기사를 써왔다. 경찰이 범죄 정보 수집도 아닌 민간인의 일상을 사찰하는 것은 정말 잘못 됐다. 경찰청 정보국을 해체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사를 계속 쓰니까 경찰청 정보국은 긴장했을 것이다. 정보국장이 일선 직원들에게 “정보국은 해체 되지 않으니 업무에 흔들림 없으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단체로 보냈다고 한다. 경찰은 내가 미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 개인 정보를 보복하듯이 유출해버려도 되나? 내가 아무리 미웠어도, 나도 엄연히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인데. 국가에 밉보이면 이렇게 국민의 기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게 이 나라구나. 지금은 그러나 어디에 항의를 할 때가 아니다. 빨리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확인 질문에 침묵하면 더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 회사 팀장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화로 상의를 했다.

“선배. 기자들한테 제가 입건된게 사실인지 여기저기서 확인 요청이 와요. 많이 퍼졌나봐요.”
“그러게. 이젠 겉잡을 수 없는 거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냥 무응답하고 있으면 기자들은 뭔가 있나보다 하고 더 파헤치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와전된 거라고. 제가 그렇게 회사에 보고한 것으로 해요. 괜히 우리 회사가 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인상을 주면 안되잖아요. 만약 나중에 기자들이 회사가 사실관계를 처음부터 정확히 알았던 거냐고 묻는다면, 제가 허위 보고한 것으로 해요. 한겨레가 저처럼 기자들에게 거짓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침묵하고만 있을 수도 없으니까. 제가 회사까지 속인 것으로 그렇게 해야만 해요. 그래야 회사에 나중에 어떤 피해가 안가요.”

팀장에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한건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사고를 애초에 내지 말았어야지. 지금 와서 회사를 보호하려고? 이런 노력을 회사가 알아줄거 같나? 아니다. 그래도 회사는 보호를 해줘야 한다. 나 때문에 한겨레가 피해를 보면 안된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 공공재다.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어떻게든 최소화해야 한다. 내가 설사 나중에 도덕적으로 비판받더라도 회사는 아무 것도 몰랐던 것처럼 만들자. 그게 내가 사랑하는 회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 아닐까.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하면 나는 마약도 하고, 회사까지 속인 그런 사람으로 평생 남을텐데. 완전 쓰레기 되는거 아닌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만 전화를 걸어 정보가 와전된 것이라는 식으로 설명해주자. 그래야 추가 취재를 안하지 않을까. 

“기자님. 제 사건이 제 업무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인적인 사생활이에요.  제 친구 이야기가 저와 관련된 것처럼 와전된 거고 해프닝에 불과해요. 기사좀 안쓰시면 안되나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일단 기사화는 보류하겠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자를 속였다. 기자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자는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하여 우리 사회 각종 권력의 부패 등을 감시하는 것을 업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사실상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또한 모든 국민 앞에 내 사생활을 오픈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대체 왜 기자들이 나를 이렇게 못잡아먹어서 안달인가. 나는 공직자가 아니다.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부모님은 어떡하나. 나 때문에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우리 회사는 어떡하나. 혼란스럽다. 일단 나중에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국민 앞에 모든 것을 설명하자. 지금은 보도가 안나오게 만드는게 최선이다.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는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를 전하자.

괴롭다, 죽고싶다, 심장이 멎어버렸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란 게 존재했구나.
무엇보다, 내가 혼자라는 게 힘들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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