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닌 척]경주 맛집 1-교리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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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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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아닌 척]경주 맛집 1-교리김밥
(먹스팀은 전용 대문이 있었던가요...)

황금연휴를 특별한 여행 없이 지나보내고 우울했던 우리 부부는 지난 주말 경주 나들이를 계획했다. 핑크뮬리라는 게 있대서 거기다 아내를 세워 놓고 사진도 찍을 겸. 하지만 핑크뮬리는 예뻤지만 둘러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징글징글했다. 아내에겐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냥 호텔에서 같이 치킨 먹고 맥주 마시고, 맛있는 집 찾아 가서 배불리 먹었던 게 더 좋았다.

이번 나들이에서는 아내의 안내로 전국3대 김밥집이라는 교리김밥을 맛봤고, 나의 검색으로 40년 이상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반도식당에서 생갈비살을 먹었다. 먹스팀 지도에 하나라도 더 기여하고자 포스팅은 나눠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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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맛집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봐야 김밥이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제주도에 뭐라더라 '김밥 주제에' 예약이 없이는 맛볼 수 없는 것도 있다고 하더라. 나는 집에서 김밥을 싸면 한 세줄 정도는 그 자리에서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하지만 김밥이 맛집의 반열에 오르고, 사람들을 몇십분씩 줄을 세우는 것에 관해서는 좀 시선이 곱지 않다.

- ### 교리김밥 : 경북 경주시 교촌안길 27-42 ###

오후 2시 40분, 점심 끼니 때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근방에 도착하자 긴 줄부터 보이며 맛집이라는 포스를 풀풀 풍기는 이 집. 맛집을 찾아다니면서도 줄 서는 것은 별로였지만 아내의 "거의 전부 포장 손님이라 줄이 금방금방 줄어든다"는 말에 일단 줄 끝에 서기로 했다.

지방 언론이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해서 줄이 짧아지는 게 좀 더뎠지만, 20여분을 기다리자 가게 안이 들여다 보였고, 김밥과 함께 팔고 있는 잔치국수(5000원)의 멸치국물 냄새가 주린 배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가게 안엔 여러 명의 이모들이 기계처럼 김밥을 말고 있었다.

![KakaoTalk_20171015_232214881.jpg](https://steemitimages.com/DQmcSdQ3bnznu1sh4KnUuJ9XBjKg9HcFGC6v2h1GJQCmadm/KakaoTalk_20171015_232214881.jpg)
가게 입구엔 다른 자타공인 맛집들이 그렇듯 무슨무슨 방송에 소개됐었다는 자랑질과 함께 '재료의 제한으로 1인 당 2줄씩만 판매한다'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그래 잘났다.

드디어 순서가 되자 정작 입을 떡 벌어지게 했던 것은 김밥의 수준을 넘어선 무시무시한 가격이었다. 기본이 2줄인 것 같은데 6400원이다. 우리는 1만 2800원을 내고 도시락 두개를 받아들었다. 한 줄에 3200원인 셈. 이 정도 가격이면 다른 김밥집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는 않은 것 같지만 도시락을 받아보면 역시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KakaoTalk_20171015_232213509.jpg](https://steemitimages.com/DQmUhE1YWrnEnaXovfjQf94M7V2nWngkUCrmRxqZo3H8qhz/KakaoTalk_20171015_232213509.jpg)

도시락 사이즈로 보나 내용물로 보나 다른 깁밥집의 한줄 분량 밖에 되지 않는다. 뚜껑을 열어보면  정확히 12피스의 김밥이 수줍게 고개를 파묻고 있는데 얄밉게도 다른 김밥보다 두툼한 네 쪽이 "우리는 대가리와 꼬랑지다. 봐봐 네 개야. 그러니까 두 줄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김밥 한 줄에 6쪽. 두 줄은 두 줄이다. 그러나 유난히 짧은 두 줄일지니.

수십 분을 기다린 끝에 엄청나게 비싼 김밥을 사서 월정교 인근 천변 공원에 앉아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가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맛있다. 우마이. 나는 고독한 미식가를 연기한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와 같이 미간에 두 줄 주름을 잡은 채 입안의 김밥을 음미했다.

집어 드는데 급하게 싼 듯 쉽게 터져버려 실망스러웠던 김밥은 입안에 들어가자 맛을 꽃피웠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달걀지단. 김밥의 부속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 달걀지단이 이 집 김밥의 비기였다. 달달하면서 촉촉한 지단을 얇게 여러겹으로 만들어 입안에서 폭신한 식감이 느껴지게 한 것. 우엉, 김밥햄 등 조그맣게 들어간 다른 부속들과 맛의 비율이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맛있다. 맛있어. 이 맛으로 저 집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6시까지 대충 10초에 만원씩을 벌고 있구나. 맛있고 부럽고 얄밉다.

비싸다는 생각이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한 번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김밥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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