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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유학을 끝내고 잠시 한국에 들어와있는 고등학교 후배. 며칠 전 그녀와 재회했다. 작년 가을에 함께 도쿄 UMF를 즐긴 후로 약 1년만이었다. 우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근처 강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sup>(의사선생님이 술 마시면 안된다고 그랬는데… ㅎ)</sup> 밤이 깊어가도록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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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언니,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졌어. 
몇 년 전에는 뭐랄까…. 
대단하긴 했는데 좀 날이 서있었달까? 
늦게까지 같이 놀아놓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셔츠 다리고 있는 거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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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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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랬지. 혼자 일본 땅 밟고 처음 1년간은 저녁 11시에 자고 5시에 기상해서 아침식사, 산책, 예습, 등교, 하교, 복습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 땐 가계부 쓰면서 10원의 오차도 허용하지 못할 만큼 신경이 곤두서있었어. 왜냐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빈털터리 국제 미아라도 될 것 같았거든. 네가 말하는 내 모습도 회사에서 그런 일이 있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랬어. 지금은 나도 내가 많이 말랑해진 걸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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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것을 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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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고 멋진 결과들을 내야, 더 냉정하고 차가워져야, 자기 어필도 부지런히 해주고 욕심도 부려주고 성격도 나빠져야 성공에 가까워지는 줄 알았어. 그러다가 왠 미친놈때문에 잘 닦고 있던 성공궤도에서 이탈하게 됐잖아? 많이 괴로웠는데, 나를 괴롭히던 것 중 하나는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아. 난 미움 받을 용기 같은 거, 거의 없었거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해. 내 안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으니, 타인의 사랑에 목마르고 미움은 두려울 수 밖에. 사회적 성공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던 일들을 이것저것 해버리고, 실망도 미움도 받았는데 여전히 나는 죽지 않고 잘 살아있더라. 놓치면 안 되는 줄 알고 꽉 쥐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없어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진짜로 놓치면 안되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어. 바로 자기자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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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생각을 했어. 내가 그렇게 쫓던 성공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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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것을 하고 싶었어. 그런데 난 세상의 획일화 된 성공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던 거였어. 세상의 성공을 쫓고 있었을 때는 말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어떻게 지킬까* 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를 열심히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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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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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라는 사람을 “더 좋게”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즉,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것도 모자라, 그들의 시점을 내 안으로 가져와 지속적으로 자신을 할퀴었어. 그들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어도, 내가 그들의 얼굴을 하고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었단 말이야. 더 좋게 ‘되고 싶어서’ 했던 선택보다 더 좋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했던 선택이 더 많은 것 같아. 그러니 남들 눈에 아무리 좋아보여도 만족스럽지 않고, 그런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았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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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동안의 내 모습은 다 거짓이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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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전체적으로 보면 꿋꿋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온 것 같아. 게다가 난 `검색하면 금방 상위에 뜨고` <sup>(스팀잇이 SEO에 신경 좀 썼나...)</sup>`, 공개 대상 설정도 불가능하며, 7일이 지나면 수정도 삭제도 되지 않는` 블록체인 위에 나라는 사람을 새기고 있잖아. 푸하하! 무모해!!!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온전한 내가 되어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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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멈춘 것처럼 보이는, 천천히 나아가는 삶, 이런 삶에서는 행복해지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 길가에 핀 꽃을 보거나 맑은 하늘에 뽀얀 구름 둥둥 떠다니는 것만 봐도 행복해지니까. 병원비로 탕진하고 김밥천국에서 혼자 2,500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어도 그만큼 건강해졌으니까 행복해. 교정을 했는데 하필 압구정 투명치과라서 마무리가 애매해졌지만 중학생때부터 하고 싶던 것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많고 그들과 함께 강가에 발 담그고 맥주를 홀짝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 PTSD랑 싸우다가 지치거나, 너무  지쳐서 땅 파고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못할 때를 제외하면, 훨씬 더 나은 삶이야. 날을 세울 이유가 없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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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다. 오늘은 힘이 나. 미뤄둔 일들을 해치워야지. 우선은, 변호사를 선임하더니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모든 행위를 부인하는 이 미친놈의 변론을 *말랑말랑하게* 부숴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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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안산시에서